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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빵] 김용민의 조간브리핑 - 박원순, 유시민, 이재명, 진중권, 노회찬

by bogosipn 2015. 11. 23.

[팟빵] 김용민의 조간브리핑 - 박원순, 유시민, 이재명, 진중권, 노회찬




김용민브리핑 일일 뉴스 브리핑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

2015년 11월 23일 (월) 살인진압 규탄 및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촛불문화제 매일 저녁 7시 서울대병원 앞(대학로출구)



떠오르는 대선주자 성남시장 이재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인간적 면모를 알 수 있는 조선일보 만물상 코너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는 늘 화제였다. 1993년 금 융실명제 도입을 전격 발표할 때였다. 대통령이 TV 카메라 앞에서 담화문을 읽고 있는데 대변인이 사색이 돼 다가왔다. 케이블이 연결되지 않아 생중계되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다 시 준비될 때까지 화를 참느라 YS는 의자 팔걸이를 부서뜨릴 정도로 꽉 붙들고 있었다. YS가 화를 터뜨릴 땐 정말 무서웠다.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 었다. 취임 초 대통령이 골프 금지령을 내렸는데도 홍인길 당시 총무수석 비서관이 몰래 골프를 친 일이 있었다. 이 골 프 회동이 한 일간지 만평에 나와 버렸다. 홍 수석은 한동안 대통령을 피해 다녔다. 일주일 뒤 YS가 "보래이" 하면서 불러 세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YS가 탁자 위에 발 을 척 올리더니 말했다. "별일 없제? 잘하래이…." YS가 민자당 대표 시절 외교사절들이 참여하는 청와대 행사 에 초대받았다. YS의 '영원한 비서' 김기수는 이날 드레스코 드가 '연미복'이라고 전했다. 막상 가보니 다들 정장 차림이었 다. YS는 혼자 연미복을 입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사를 마쳤다. 상도동 집으로 가는 길 자동차가 한강대교를 건널 때 YS가 말했다. "기수야, 니 한강에 뛰어내리래이." 이런 일 화가 있었다. 여기까지가 조선일보에 실린 내용이다. 이같은 불같은 태도는 단순무식으로 규정될 수 있었지만, 그 것은 유신독재를 끝내고, 군사독재마저 끝낸 저력의 원동력이 기도 했다. 오늘 야당이 배워야 할 지점이 아닐까. 



이재명 성남시장, 종북몰이꾼에 일침을 가하다.




■ 반드시 알아야 할 뉴스 ○…"2013년도에 1년 반을 (입원해)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입원을 반복적으로 조금 조금씩 더 하셨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 씨의 말이었다. 김영삼 전 대 통령의 빈소에는 여야를 초월해 정치인과 시민들의 조문 행 렬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오늘 아침 11시에 입관 예배를 치 를 예정이다. 해외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은 귀국 이후인 이르면 오늘 빈소를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직사 살수를 하고, 살수 세기도 지침의 기준을 훨씬 초 과하여 살수했다는 점에 있어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정길 변호사의 말이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오늘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한 현안보고를 받는다. 오늘 전체회의에는 강신명 경찰청장 등이 출석해 지지난 토 요일 집회시위 상황과 경찰의 시간대별 조치 상황 등을 보고 할 예정으로,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와 불법·폭력시위 논란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치할 것으로 보인다. ○…"적반하장을 넘어 패륜을 저지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민중총궐기에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말이었다. 경찰이 그제 민주 노총 본부와 금속노조, 건설노조 등 8개 단체의 사무실 12곳 을 압수수색했다. 민주노총 압수수색은 19년만이다. 지지난 주말 집회 당시 장시간 도로를 점거한 채 사전에 준비한 흉 기를 찾았다고 밝혔는데 그중 하나인 퍼포먼스용 쇠망치마저 증거로 내세워 빈축을 사고 있다. 


■ 반드시 알아야 할 뉴스 ○…“희생자가 적지 않다는 걸 압니다. 먼저 호텔을 수색한 뒤에야 정확한 사망자 수를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살리프 트라오레 말리 보안장관의 말이었다. 서부 아프리카 말리 수도에 있는 한 고급 호텔에서 알카에다 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슬람 무장단체가 난입해 외국인 투숙객과 호텔 직원 등을 억류하고 인질극을 벌이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괴한들의 호텔 습격으로 프 랑스인 1명과 벨기에인 1명, 말리인 2명 등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호텔 내부의 2개 층에서는 27구가 발견됐으나 이 들의 국적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이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파기다. 합의 사항 결렬시 노사정에 남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김동만 한국노총위원장의 말이었다. 한국노총이 정부주도로 국회 상정된 노동개혁 5대 입법안을 개악안으로 규정하고 폐 기를 주장했다. 또 공공과 금융부문에서 추진 중인 성과연봉 제 도입 중지,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변경 등 2대 지침 강행 포기 등을 요구했다.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대타협 파기로 간주하고 강력한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해수부가 계속 자료제출을 거부하면 징벌적 예산 삭감 을 하게 될 겁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안민석 새정치민주연 합 의원의 말이었습니다. 국회 예산결산특위 예산안조정소위 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문건'문제로 파행됐다. 해수부가 세 월호특조위의 정상적 조사활동을 방해하는 대응방안 문건을 만들고 이에 따라 세월호특조위의 정상적인 조사활동을 방해 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수부는 문건의 진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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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단독] “찬송가 함께 부르자” 몇 주 전 가족들과 마지막 만찬 ‘나의 갈 길 다가도록’의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족한 은혜 주 시네”는 2절 가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 가장 좋아했 던 찬송가이며, 몇 주일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함께 불렀으면 좋 겠다”고 말한 찬송가였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찬임을 직감 한 가족들은 그가 직접 부른 찬송가를 녹음했다고 한다. 아 는 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교회 장로다. 장로 대통령을 만 들어야 한다는 몰지각한 개신교 정치 목사들이 덕도 본 바 있었는데, 그의 삶을 관통한 찬송가와 성서는 환란가운데 신 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성서는 ‘이사야서’ 41 장 10절이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 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 리라”는 내용이었다. 


[서울신문] 여성근로자 농성 감시 경찰 따귀 때 려… 2층 서재로 부르더니 “겨레 위해 기도” 김영삼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권력을 차례로 종식시키며 군부통치를 끝내고 문민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민주정부 10 년의 초석을 다졌다. 김영삼이 박정희 권력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계기가 된 것이 있었다. YH사건이고, 뉴욕타임스 인 터뷰였다. 우선 YH사건을 다룬 서울신문 기사부터 보자. 유신 말기인 1979년 8월 가발 업체인 YH무역의 여성 근로자들이 서울 마포 신민당사를 찾아와 농성을 벌였다. 경찰들이 밀착 감시 하며 당사 주변을 에워싸다시피 하자 당시 YS는 경찰의 따귀 를 올려붙이기도 했다. YS는 YH 사건 이후 공안통치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지만 “박정희 정권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최후 발악이다”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 9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고, 한국 정부에 민주화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라”고 주장했다. 공화당과 유정회의 여 당은 벌떼같이 일어났다. ‘국헌을 위배하고 반국가적 언동을 했다’며 국회의원 제명 동의안을 제출했고 무술경관들로 방호 벽을 쌓아 야당 의원들의 접근을 차단한 가운데 본회의장이 아닌 여당 의원총회장인 146호실에서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YS는 제명된 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밤이 깊으면 동이 튼다” 등의 유명한 말을 남겼다. 10·4 YS 제명 후 한 달 보름도 안 돼 그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 마산을 중심으로 10월 16~19일 이른바 ‘부 마사태’가 일어났고 10·20 위수령 발동 6일 뒤 10·26사건으로 유신정권은 종말을 맞았 다. YS는 유신 말기, 신민당 출입기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수시로 “지방 가 봐라, 다 끝났다. 서울에서는 잘 모른데이”라는 말 을 달고 다녔다.


 [동아일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 거]DJ “김영삼은 어려운 일을 너무 쉽게 말해” 대부분의 신문은 김영삼을 이야기하면서 이 사람을 빼지 않았다. 바로 김대중이다. 김영 삼 전 대통령은 생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와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라고 이야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은 화해했다. YS와 DJ는 ‘민주화 동지’였지만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도 확연히 달랐다. YS, DJ를 모두 취 재한 언론인 출신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이같이 평가했 다고 한다. “DJ에게 YS를 평해 보라니까 DJ는 ‘그는 어려운 일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말해’라고 했다. YS에게 DJ를 평해 보라고 하니까 ‘그는 쉬운 일도 괜히 어렵게만 말해’라고 답 했다.” 이제 양김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중앙일보] 이희호·권양숙 “민주주의 발전시킨 지 도자” 설훈 “YS·DJ 사석에서는 말 놓고 지낸 사 이” ‘동교동 막내’로 정치를 시작한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은 “사석에서 DJ와 YS는 말을 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하루는 DJ가 대통령 퇴임 후 YS에게 ‘내가 먼저 죽든 YS가 먼저 죽 든 서로의 장례식장에 가장 먼저 달려올 사람은 우리 둘뿐 아니겠나’라는 말을 건넸다”며 “DJ는 YS에게 항상 ‘어찌됐든 우리 둘은 잘 지내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설훈 의 원은 “YS가 예전에 군부 ‘하나회’를 척결하는 거 보고 DJ가 ‘나도 저거 쉽게 못할 일이다’라는 말씀도 하셨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YS “하나회 해체 안했으면 DJ-노무현 대통령 못 했을 것” 실제 그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재임 중 문민화 개혁은 전 광석화 같았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한 언론에서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특히 하나회 핵심이던 김동진 육 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하면서 숙군의 칼날을 휘둘렀을 때에는 모두가 놀랐다. 하나회는 ‘12·12 쿠 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주축으로 한 육사 11, 12기 출신들의 군 사조직이었다. 한 달도 안 돼 수도방위사령관과 특전사령관을 전역시키고 1·3군사령관과 2 작전사령관, 군단장과 사단장에 이르기까지 하나회 장성들의 옷을 벗겼다. 하나회 척결은 1995년 하나회 수장 격이던 전· 노 두 인사의 ‘반란죄’ 처벌로 이어졌다. 그리고 했던 말. “모두 깜짝 놀랬재.” YS는 이후 “내가 하나회를 해체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노무 현 대통령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군 개혁으 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얘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개혁몰이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정 치자금은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고 선언하며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전격 공개했다. 세상을 떠난 지금 시점에 계산해보니 상도동 집이 재산의 전부였다. 부동산 투기 정황이 드러난 사람이라면 YS 자신이 임명한 초대 내각의 일부 장차관, 정 치인, 고위 법조인도 가차 없이 옷 벗어야 했다. 금융실명제 의 전격 실시는 그 맥락이다. 또한 전두환 노태우를 감옥에 보내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함으로써 역사를 바로 세우려 는 의지를 강하게 굳혔다. 그러나 공이 있으면 과도 있는 법. 일생일대의 승부수로 통 하는 3당 합당은 지금도 평가가 분분하다. 오늘자 조선일보 와 한겨레의 3당 합당에 관한 평가는 극명하다. 먼저 조선일 보.


 [조선일보] [사설] 金泳三 전 대통령 서거, 우리 시대 巨人을 떠나보내며 “야당 진영에 함께 몸담았던 이들로부터 비난도 받았으나 이 3당 합당이 결국 군정(軍政) 종식과 '문민정부 탄생'이라는 역 사적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또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 민주화는 1987년 6·29 선언과 대통령 직선으로 획 기적 전환점을 이룩했지만 민간 출신이자 오랜 야당 지도자 였던 김 전 대통령 당선으로 사실상 완결됐다. 군정에서 민 정으로 넘어가면서 동남아·남미·아프리카 등 다른 나라에선 수도 없이 벌어진 헌정(憲政) 중단, 쿠데타 같은 혼란 없이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도 온건 의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이 런 정치인들에 힘입은 바 크다.” 


[한겨레] [사설] ‘민주화 주역’의 서거와 이 땅의 민주주의 “고인은 3당 합당을 통해 지역주의를 돌이킬 수 없는 한국 정치의 상수로 만들어버렸다. 그 폐해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 려오고 있다. 부마항쟁으로 한때 ‘민주화의 성지’라고 칭송받 던 지역은 이제는 보수 정치 세력의 텃밭이 되고 말았다. 고 인이 만들어버린 한국 정치 지형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두고 두고 한국 정치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 나라를 외환위기에 빠지게 한 잘못 등은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한겨레는 외환위기보다 더 큰 적폐가 3당 합당이었다고 말했 다. 사실 한국 정치를 영남당과 호남당으로 가른 데에는 3당 합당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외환위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지점도 살펴보자. 


[경향신문] [YS 서거 - 삶과 정치] 독재 맞서 목 숨 건 투쟁…단일화 실패·3당 야합 ‘찬물’도 1996년은 환희의 한 해이자 정권 몰락의 씨앗이 뿌려진 시 기였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에 가입했다.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였다. 하지만 한총련 사태 때 대대적인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등 우경 본색 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1996년 말 안기부법·노동법을 날치기 시도하면서 거대한 역풍을 맞는다. 정권 말기는 암울했다. 1997년 1월 한보철강으로 시작된 대 기업의 도미노식 부도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12월 국제통화 기금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수모를 겪었다. ‘소통령’으 로 불리던 차남 현철 씨가 대통령 임기 중 구속되는 초유의 일도 겪었다. 결국 1998년 2월 라이벌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 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상도동으로 돌아갔다. 퇴임식에서 는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 고 했다. 결국 90% 지지율로 시작한 김영삼 정부가 몰락하다시피 한 계기는 개혁의 맛이 떨어지고 우경 본색을 드러내면서였다. 오늘 아침 그의 부고를 전하는 신문은 그가 우경 본색을 드 러낸 역사를 하나같이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도리어 민주화를 위한 고난의 일로를 칭송한다. 김영삼의 정치적 아들 또는 상주를 자처하는 이들은 돌아봐야 한다. 자신이 정치적 아버 지로 모시는 분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 그 정치적 아버지의 오욕을 제대로 성찰했는지. 혹시 나는 정치적 아버지가 싸웠 던 괴물과 협력하고 있는 정치적 아들은 아닌지, 곧 정치적 패륜을 범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이 동아일보 기사 를 끝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갈음하려 한다.


 [동아일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박정희와 악 연… 朴대통령과도 순탄치 않아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YS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딸 과도 사이가 안 좋았다. YS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상도동 자택에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기로 한 김 문수 경기도지사를 만나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을 겨냥해 “칠푼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기이한 행보도 있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인 2006년 지방선거 유세 중에 테러를 당하지 않았나? 그때 김 영삼 전 대통령이 병문안을 갔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거절했던 모양이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나. 빈정 상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은 명백한 정치테러로 정치테러의 경우 배후가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 걱정된다" 며 "나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초산 테러 등 테러를 많이 받은 사람이라 이번 일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정 희 딸 찾아가서 너희 아버지 시절에 테러를 당했다는 언사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한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언은 ‘통합’과 ‘화합’이었다. 차남 현철 씨는 “필담 식으로 글씨를 좀 쓰셨는데, 평소 안 쓰시 던 ‘통합’과 ‘화합’을 쓰셨다”고 전했다. ‘무슨 의미냐’는 질문 이 나오니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 고 말했다고 한다. 통합과 화합, 누구에게 요구할 사항인가, 생각해보면 이 말이 누구를 위한 말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뉴스의 재구성 듣고 온다.


 [한겨레] 경찰, 정동 사무실 등 8곳 뒤져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가 전국민주노동 조합총연맹 사무실과 산별·지역조직 사무실을 일제히 압수수 색했다. 민주노총 사무실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김 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월 이른바 ‘노동법 개정투쟁’ 이 후 19년 만이다. 경찰은 압수수색 직후 “사무실에서 발견한 불법시위용품”이라며 밧줄, 손도끼, 경찰헬멧, 해머 등을 공개 했다.


 [경향신문] 퍼포먼스용 해머 가져가 “폭력시위 증 거” 이게 지지난 토요일 민중총궐기 때 쓰인 흉기라는 것이다. 해머는 무엇일까? 이건 민주노총이 평소 바꿔야 할 현실을 혁파하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사용해온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6월18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최저임금=최고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이라고 적은 대형 얼음을 깨는 퍼포먼스에 해 머를 사용했다. 민주노총은 “폭력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한 언 론 플레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손도끼에 대해서도 “주말농장에서 농작물을 가꾸 고 캠핑도 다니는 금속노조 간부의 개인 물품”이라며 “경찰 에 경동시장에서 구매한 개인 물품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위 연관성에 대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압수해갔다”고 밝혔 다. 이어 “밧줄은 2013년 철도노조 파업 진압을 위해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진입할 당시, 고층 건물 좁은 계단에서 경찰과 조합원의 실랑이 중 추락사고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계단 난간 사이를 엮어 안전망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 다.


 [한국일보] [기자의 눈]'좌익효수' 기소는 언제... 검찰은 응답하라 민주노총 때려잡기 전에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중 한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수사 경과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달 20일 우스꽝스러운 소식이 야당을 통해 전해졌다. 2012년 대선 전 ‘좌익효수’란 이름으로 수천 건의 악성 댓글 을 단 국가정보원 직원이 원대 복귀했다는 얘기였다. 좌익효 수는 극도의 여성비하와 호남인을 ‘홍어’로 비하하고 5ㆍ18 을 폭동으로 왜곡한 장본인. 그런 그가 6개월의 대기발령 조 치가 풀려 대공수사국 요원으로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검찰 은 내부징계 시기가 만료될 때까지 문제 공무원의 기소여부 를 판단하는 게 보통이다. 범법자에게 국가업무를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검찰은 김진태 검찰총 장 2년 임기 내내 이 사건을 덮어두고 있다.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이 좌익효수의 문제 를 인지한 지는 30개월이 지났다. 좌익효수가 성적 모욕 및 국정원법 위반혐의로 피소된 지도 26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은 기소와 대법원을 거쳐 파기환송 심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좌익효수는 작년 6월 한 차례 조 사를 받았을 뿐이고 이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을 기소했던 과거의 검찰과, 좌익효수 사건을 묻 어둔 지금의 검찰은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다. 검사들은 스스로 검찰 본연의 임무가 실체적 진실을 위한 수 사(搜査)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 검찰에서 면피용 수사(修辭) 만이 오가는 걸 보면 이제는 사법적 원칙보다 정치적 판단이 우선이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남북정상 회담 회의록 사건,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등에서는 여러 논 란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기소를 마다하지 않던 검찰 아닌가. 그렇게 기소한 참여정부 관계자들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 기강비서관은 결국 무죄를 선고 받았다. 좌익효수를 고소한 ‘망치부인’ 이경선 씨는 한국일보에 “어린 아이에게 댓글 테러를 일삼은 국정원 직원에 대해 수사하지 않는 검찰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좌익효수는 미성년자인 이경선 씨 딸에게 인터넷방송 에서조차 도저히 옮겨 전할 수 없을 망언을 일삼았다.


 [경향신문] 위태롭다…‘빚’내는 한국 한국의 국내총생산 즉 GDP 대비 가계부채 규모가 18개 신 흥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부채 비율도 4위를 기록해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와 맞물려 위험 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제금융협회 통계가 그런데. 이같은 가계부채 규모는 선진국의 평균 74%를 웃도 는 것은 물론, 신흥 아시아 평균인 40%에 비해 2배에 이른 다. 기업부채 역시 한국의 GDP 대비 비금융 기업부채 비율은 106%로, 선진국의 90%를 크게 웃돈 것은 물론, 18개 신흥국 중 네 번째로 높았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 한 상황을 감안하면 기업들의 부채상환 부담이 가중되며 위 험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다. 


■ 오늘의 날씨 오늘은 서울을 중심으로 비가 내리며 전국이 대체로 흐린 상 태다. 오후에는 비는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점차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비가 내리면서 아침 기온은 평년보다 조금 높겠으 나 낮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고, 내일 낮부터 기온이 뚝 떨어 질 것으로 보인다.


■ 오늘의 칼럼 오늘은 한국일보 [아침을 열며] 칼럼, “복지는 포퓰리즘이다” 라는 제목의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의 글 소개 하며 마무리한다. “포퓰리즘. 우리말로는 ‘대중주의’ 정도로 번역될 이 용어가 최근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비난하는 근거로 또 회자되고 있 다. 이 말이 그렇게도 저급한 정치나 정책을 말하는 걸까? 사실 일반적인 정의는 그렇지 않다. “특권층과의 투쟁에서 보 통 사람들의 권리와 힘을 지지하는 정치적 원칙”이라고 프린 스턴대학의 용어집은 풀이하고 있다. 캠브리지사전에서는 “보 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포퓰리즘이란 용어가 한국에서 고생하고 있다. 대담한 복 지를 두고 일부 반복지론자들이 “빨갱이식”이라는 녹슨 칼 대신 최근에 꺼내든 것이 “포퓰리즘”이다. 서울시의 청년수당만 해도 그렇다. 중앙정부는 그간 학계와 시민단체, 청년단체들이 주창해온 청년실업수당제도나 청년고 용할당제 등을 외면해 왔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지난해 9 월부터 서울 청년들의 소리를 직접 들어왔다. 그 결과의 하 나로 마침내 내년 3,000명의 청년들에게 총 90억 원을 투입 하여 서울청년활동지원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소극적 중앙 정부정책의 빈 곳과 까다로운 접근성과 모호한 성과를 넘어 보기 위해 시범적 성격의 사업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과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복지부가 총출동하여, 중앙정부 정책과 중복되니 불허할 것이 뻔 한데도 자신들과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 정책의 수립과정이요 내용이다. 이것이 반복지 진영이 모두 달려들어 포퓰리즘이라 거세게 비난하는 정책이다. 그래 맞다.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은 분명 포퓰리즘이다. 청년 대중들에게 묻고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여 만든 정책 이란 점에서 ‘진정한’ 포퓰리즘 정책의 전형이다. 그러니 제 대로 된 정책을 무책임과 낭비라는 이미지로 덧칠하려는 의 도를 갖고 포퓰리즘의 올바른 뜻을 오염시키지 마시라. 근본 적으로 모든 복지는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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